강동 경희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춘기를 겪은 아들이 이제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고토 지역에서 장례를 준비하시는 분들이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외아들의 아버지는 70년대 전라북도 고창에서 상경해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차려 송파에서 대형유통회사를 운영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무뚝뚝한 성격 탓에 아들에 대한 사랑을 단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아 무례했지만 지금은 아버지도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
아버지는 유료장례라며 가입을 반대했고, 아들은 후불장례식에서 품격 있는 장례를 인정하면서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첫 장례식이라 걱정이 컸다.
서울시 강동구 동남로 892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
아버지의 조문객은 약 200명 정도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딱 적당한 크기의 영안실을 선택했습니다.
3일 동안 불편함 없이 조문객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여기 기독교인인 아버지가 좋아하는 성경구절로 뜻을 이루며 장례식장을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평소 엄마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관을 꽃으로 채워주고, 엄마와 있을 때는 종종 꽃을 선물하기도 했다.
메이크업 서비스는 고인의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고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본 후 가족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줍니다.
3일간의 평화롭고 슬픈 장례를 마친 아들은 아버지의 사진을 싣고 서울 장례식장 리무진을 타고 공원으로 향했다.
얌전한 아들도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내며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튼튼한 나무 밑에서 아버지를 무사히 모시고 가족들이 작별인사를 한 뒤, 나무를 닮은 상주 아버지는 민감한 상황에서 부탁을 많이 한 점에 대해 사과하고 너그럽게 대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모습을 물려받은 아들은 나무처럼 꼿꼿이 꼿꼿이 꼿꼿이 서서 장례 행렬 내내 주민들 앞에 차분하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강동 경희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